번역(翻訳): 방석구

大久保利通(おおくぼ としみち)
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
天保元年, 1830 ~ 明治11年, 1878. 享年49歳.
텐포 원년(天保 元年) ~ 메이지 11년(明治 11年). 향년 49세.
薩摩の下級武士。西郷隆盛と並ぶ薩摩のリーダー。「情の人」の西郷に対し、こちらは目的達成のために冷酷無残な謀略を次々と生み出した「非情の策士」だった。
사츠마(薩摩)의 하급 부시(武士).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와 견줄만한 사츠마(薩摩)의 리더(Leader)이다. 사이고(西郷)가 「인정 있는 사람」이라면, 이쪽은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냉혹 무참한 모략을 차례로 만들어 냈던 「비정한 책사(策士)」였다.
「岩倉(具視)公と成した大事は、今日となっても決して口外できぬ」と、維新後、自ら述懐したほど「寝技」を好んだ。現在噂される大久保の策謀の中でも有名なのが、孝明天皇の毒殺と坂本龍馬の暗殺である。
「이와쿠라(岩倉) –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 – 공(公)과 이룬 대사는, 시간이 흘러 현재가 되었어도 결단코 발설할 수 없다」라고, 메이지(明治) 이후, 스스로 술회했을 정도로 「이면 공작」을 좋아했다. 현재 회자되는 오쿠보(大久保)의 책략 가운데에서도 유명한 것이 코메이텐노(孝明天皇)의 독살(毒殺)과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암살(暗殺)이다.
威厳ある氷山のようなポーカーフェイスが有名で、明治政府の高官だった頃、大久保の靴音が響くだけで部下の表情が緊張で張りついたという。また自己の感情を押し殺す機械のような性格で、父を死に追いやった島津久光に平然と仕え、寺田屋事件でかつての同志が上意討ちに遭った際にも、大義を優先してこれを見殺しにした。
위엄 있는 빙산과도 같은 포커 페이스(Poker face)가 유명하고, 메이지 정부(明治政府)의 고관이었을 무렵에는, 오쿠보(大久保)의 구두 소리가 울리는 것만으로 부하의 표정이 긴장으로 뒤 덮였다고 한다. 또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기계(機械) 같은 성격으로,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시마즈 히사미츠(島津久光)에게 태연스럽게 사관하고, 테라다야 소동(寺田屋騒動)에서 이전의 동지가 죠이 우치(上位討ち)를 겪었던 때에도, 대의를 우선하여 이것을 방관하였다.
強固な武力倒幕論者で、幕府を滅ぼして徳川慶喜を血祭りに上げることでしか、新たな世は来ないと信じていた。一方龍馬はあくまで平和的解決策による維新を目指したため、この相違が暗殺につながったというのが有力な説になっている。
견고한 무력 토바쿠(倒幕)론자로서, 바쿠후(幕府)를 멸망시키고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를 제물로 삼지 않는 이상,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반면 료마(龍馬)는 어디까지나 평화적 해결책에 의한 유신(維新)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이 상위(相違)가 암살로 이어졌다는 것이 유력한 설이 되었다.
しかし明治国家の礎を築くために大久保のような政治家は不可欠で、自身もそれを知り抜いていたからこそ、あえて「非情の策士」に徹したという一面もある。その死後、大久保というタガの外れた明治政府が暴走したことを見ると、存在価値の大きさが分かる。
그러나 메이지(明治) 국가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서 오쿠보(大久保) 같은 정치가(政治家)는 불가결한 존재였고, 자신도 그것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비정한 책사(策士)」에 철저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 사후, 오쿠보(大久保)라는 테가 빠진 메이지 정부(明治政府)가 폭주했던 것을 보면, 존재가치의 크기를 알 수 있다.
용어 설명
– 테라다야 소동(寺田屋騒動) てらだやそうどう
분큐 2년(文久 2年, 1862年), 쿄토(京都) 후시미(伏見)에 있는 후나야도(船宿) 테라다야(寺田屋)에서, 사츠마한(薩摩藩)의 손죠파(尊攘派), 아리마 신시치(有馬新七)등이 시마즈 히사미츠(島津久光)의 명령을 받았던 같은 한(藩) 소속의 한시(藩士)에게 암살(殺害)당했던 사건(事件). 손죠파(尊攘派)와 고부갓타이파(公武合体派)의 대립에 의한다.– 죠이 우치(上位討ち) じょうい-うち
주군의 명령으로 죄인을 죽이는 일.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
사진 출처
근대 일본인의 초상(近代日本人の肖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