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門 : 武田氏家臣
14세때 아버지 노부쓰나(信縄)가 죽자 가주(家主)가 된 노부토라는 이듬해인 1508년(에이쇼 5년)에 반기를 든 숙부 노부요시(信惠)를 죽이고 오마야다 씨를 굴복시켰다. 21세 때 고즈케의 성주 오이 노부미치(大井信達)가 반란을 일으키고 이를 후원하는 스루가의 이마가와 우지치카(今川氏親)의 개입으로 패배했으나, 곧 반격에 나서서 오이의 성을 공략하고 이마가와에 소속된 가쓰야마(勝山) 성을 포위, 이마가와와 강화를 맺었다. 1521년(다이에이 원년) 우지치카의 중진인 도토미의 성주 후쿠시마 마사시게(福鳥正成)의 침공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신겐이 태어난 지 10일이 지난 11월 23일 필사의 반격을 펼쳐 이를 분쇄하고, 가이 국내에서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그후 가이 일국의 국주를 넘어 전국의 다이묘가 되고자 시나노를 공략했지만 주요 진격로인 사쿠와 스와에서 번번이 제지당했다. 그러자 관동이 호조, 동해의 이마가와, 또한 가와고에(河?)의 우에스기 도모와키(上衫朝興)와 동맹을 맺고 시나노 정복 활동을 펼치는데, 이를 위한 세금 증대는 민심뿐 아니라 신하들의 이반마저 초래했다. 1536년(텐분 5년)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하루노부(신겐) 산조 기미요리의 딸을 알선하고, 이듬해 노부토라는 요시모토에게 자신의 딸(신겐의 누나)을 시집보내 양가의 동맹을 굳혔다. 그러나 1541년(텐분 10년) 6월, 사쿠를 평정하고 돌아오던 노부토라는 신겐 일파에게 차단되어 어쩔 수 없이 스루가의 요시모토 밑으로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는 아들 신겐이 병사한 지 1년 후인 1574년에 다카토에서 죽었다.
출처 : 야망패자 (출판사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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