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翻訳): 방석구, 총 진행도: 3/24

第九百十四夜【0914】2004年1月13日
제914일째 밤【0914】2004년 1월13일
Seigow’s Book OS/WEAR
『この国のかたち』(全6冊)
『이 국가의 형체(この国のかたち)』(전6권)
司馬遼太郎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1990年~1996年、文藝春秋
1990년~1996년, 분게이슌쥬(文藝春秋)
文=松岡正剛
글: 마츠오카 세이고(松岡正剛)
– 1 –
歴史は現在の物語で、現在が歴史なのである。どんな時点をとっても、その時点に歴史的現在が、ある。
역사(歴史)는 현재의 이야기로, 현재가 역사(歴史)인 것이다. 어떠한 시점을 취해도, 그 시점에 역사적(歴史的) 현재가 있다.
いま、日本は平成16年に突入した。大晦日に曙太郎がボブ・サップに倒された、一部の成人式が騒々しくなった以外、とくに目新しいことはない。イラクへの自衛隊派遣も北朝鮮問題も、債務超過も教室崩壊も、憲法の自主制定も中国との外交貿易関係も、日米同盟の今後すら、何も見通せない。何かが失速したままになっている。
이제, 일본(日本)은 헤이세이 16년(平成 16年, 2004年)에 돌입했다. 섣달 그믐에 아케보도 타로(曙太郎)가 밥샵(Robert S. Bob Sapp)에 넘어졌다, 일부 성인식(成人式)이 떠들썩한 가운데, 특별히 색다른 일은 없다. 이라크(Iraq)로 자위대(自衛隊)를 파견하는 것도 북조선(北朝鮮) 문제도, 채무초과(債務超過)도 교실붕괴(教室崩壊)도, 헌법(憲法)의 자주제정(自主制定)도 중국(中国)과의 외교무역관계(外交貿易関係)도, 일미동맹(日米同盟)의 앞날조차도, 특별한 전망이 없다. 무엇인가 부력을 잃어가고 있다.
こういうことについて、司馬遼太郎は生前にほとんど意見を表明しなかった。いっさいの政治的コミットメントもしなかった。それなのに、司馬こそは日本を憂い、日本を熟知していると思われてきた。なぜなのか。司馬の小説の中に意見もコミットメントもあると思われたからである。
이런 일에 대해서, 생전에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는 대부분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 일체의 정치적 커미트먼트(Commitment)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바(司馬)야말로 일본(日本)을 걱정해, 일본(日本)을 되새기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왜일까? 시바(司馬)의 소설 속에 의견도 커미트먼트(Commitment)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 2 –
司馬遼太郎を知るためには、試みに、これらの政治課題を100年前のこと、あるいは200年前のことと見直してみるとよい。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를 알기 위해서는 시험 삼아, 이와 같은 정치과제를 100년 전, 혹은 200년 전에 견주어 재검토해보는 것이 좋다.
100年前なら明治半ばのこと、伊藤や山県や井上や松方が自衛隊の遠方派遣を論じあい、デフレ対策を練っている。実際にも大隈と松方は日本資本主義最初のデフレに対処していた。200年前なら元禄から享保にかけた時代になるが、家斉の老中の水野忠成が北朝鮮の日本人拉致問題にとりくんで、異国船打ち払いを日本海で決行しようとし、小田原では藩主大久保忠真が民間のイノベーター二宮尊徳を登用して、教室崩壊の打開を相談している。300年前ならば‥‥? 新井白石が日米同盟の明日を勘案しているはずだ。
100년 전이라면 메이지(明治) 중반, 이토(伊藤)나 야마가타(山県) 그리고 이노우에(井上)와 마츠카타(松方)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 마츠카타 마사요시(松方正義) – 가 자위대(自衛隊)의 해외파견을 서로 논하고, 디플레이션(Deflation)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실제로도 오쿠마(大隈) –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 – 일본(日本) 자본주의(資本主義) – 캐피털리즘(Capitalism) – 최초의 디플레이션(Deflation)에 대처하고 있다. 200년 전이라면 겐로쿠(元禄)부터 쿄호(享保)에 걸친 시대가 되지만, 이에나리(家斉) – 도쿠가와 이에나리(徳川家斉) – 의 로쥬(老中)인 미즈노 타다아키라(水野忠成)가 북조선(北朝鮮)의 일본인(日本人) 납치문제에 몰두하고, 타국선 우치하라이(打ち払い)를 동해(東海)에서 결행하려고 하였으며, 오다와라(小田原)에서는 한슈(藩主) 오쿠보 타다자네(大久保忠真)가 민간 이노베이터(Innovator)인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徳)를 등용하여, 교실붕괴(教室崩壊)의 타개를 상담하고 있다. 300년 전이라면?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가 일미동맹(日米同盟)의 앞날을 감안하고 있을 터이다.
なんだかありそうなことばかりであろう。こういうふうに、歴史と現在はいつでも入り交じる。
왠지 있을법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역사(歴史)와 현재는 언제나 혼재한다.
こんなことは特別なことではない。いまイギリスではチャーチルの政治外交が見直され、中国では黄宗羲(17世紀に中国のルソーといわれた歴史家で、抗清運動を主導した)が浮上しつつある。いつだって、歴史は現在であって、現在が歴史なのである。ことに司馬遼太郎は、たえずこのようなことを考えながら、作品に挑んできた。そこに日本人は、自分の現場を思い合わせたのだった。
이런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영국(Inglez) – 포루투칼어 – 에서는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의 정치외교가 재조명되고, 중국(中国)에서는 황종희(黄宗羲) – 17세기에 중국(中国)의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라 일컫던 역사가(歴史家)로, 항청운동(抗清運動)을 주도했다 – 가 부상하고 있다. 언제나, 역사(歴史)는 현재이고, 현재가 역사(歴史)인 것이다. 특히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는 끊임없이 이와 같은 일을 염두한채, 작품에 몰두해왔다. 거기에 일본인(日本人)은 자신의 환경을 견주었던 것이다.
– 3 –
たとえば、貧困のため学資を得られなかった秋山好古は無償の陸軍士官学校に入り、ヨーロッパの戦争戦略を習得しながら、それとはまったく逆の果敢な襲撃に打って出ることを決意した。好古は「本当の自分」を殺し、「期待される自分」になる意志をもた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だ。御存知、『坂の上の雲』の一場面である。読者はこの好古の決断に我が身を寄せる。
예를 들면, 가난으로 인해 학자금을 내지 못했던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는 무상인 육군사관학교(陸軍士官学校)에 들어가, 구라파(欧羅派)의 전투전략을 습득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과감한 습격을 결의한다. 요시후루(好古)는 「현재까지의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자신」이 되려는 의지를 가져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알고 게시는 것처럼,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의 한 장면이다. 독자는 이와 같은 요시후루(好古)의 결단에 분연히 일어나게 된다.
河井継之助は慶応4年5月2日の小千谷会談にすべての人生を賭けた。それまで周辺に、「天下になくてはならぬ人となるか、あってはならぬ人になれ」と言ってきた信条がいよいよ試されるときである。『峠』の有名なクライマックスのひとつだ。こういう場面に、読者は現在の我が身をおいた。
카와이 츠구노스케(河井継之助) – 카와이 츠기노스케(河合継之助) – 는 케이오 4년(慶応 4年, 1868年) 5월 2일, 오치야 회담(小千谷会談)에 모든 인생을 걸었다. 지금 것 「천하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인가」라고 말해온 그의 신조가 마침내 심판대에 오를 때였다. 『고개(峠)』의 유명한 클라이맥스(Climax) 중 하나이다. 이런 장면에서 독자는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清河八郎は「兵をもたぬ天皇」に対して、自身がその最初の兵たらんとした。しかしこんな大芝居で奇ッ怪な行動を、誰が許すものか。山岡鉄太郎は悩みながらも、清河を守ることを決意する。「ただ惜しいことに背景をもたぬ。あの男はたった一人だ。あの男が英雄らしくなるまで私が見守ろう」。これは『燃えよ剣』である。山岡の胸中に託して、自分がさしかかっている人事を律したいと思った読者も、数多くいたはずである。
키요카와 하치로(清河八郎)는 「군사력을 가지지 못한 텐노(天皇)」에 대해, 자신이 그 최초의 병사가 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거대한 계략을 누가 허락할 것인가? 야마오카 테츠타로(山岡鉄太郎)는 고민하면서도, 키요카와(清河)를 지킬 것을 결의한다. 「단지 애석하게도 특별한 배경을 가지지 못했다. 저 남자는 외톨이다. 저 남자가 영웅으로 성장할 때까지 지켜볼 것이다」이것은 『타올라라 검(燃えよ剣)』이다. 자신이 야마오카(山岡)가 되어 키요카와(清河)를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한 독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주(註): “거대한 계략”이란 부분은 키요카와 하치로(清河八郎)가 쿄토(京都)에 모집한 로닌(浪人)들은 텐노(天皇)를 위해서가 아니라 쇼군(将軍)의 신변보호 및 적대적 로닌(浪人)의 퇴치하는 일. 즉, 바쿠후(幕府)를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출처는 『타올라라 검(燃えよ剣)』이라기 보다는 『바쿠마츠(幕末)』의 두 번째 꼭지인 「기묘한 하치로(奇妙なり八郎)」로 생각됩니다.
司馬の作品がこのように読まれていたことは、確実だ。司馬自身もそのことを希って、一行ずつを彫りこんだ。
시바(司馬)의 작품이 이와 같이 읽혀지는 것은 확실하다. 시바(司馬)자신도 이것을 바래 일행씩 공을 드린 것이다.
인물 설명
–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徳) にのみや-そんとく
텐메이 7년(天明 7年, 1787年) ~ 안세이 3년(安政 3年, 1856年). 에도후기(江戸後期)의 농정가(農政家). 통칭, 킨지로(金次郎). 사가미노쿠니(相模国) 출신. 합리적이고 풍부한 농업지식을 바탕으로, 오다와라한(小田原藩), 소우마한(相馬藩), 닛코신료(日光神領) 등의 부흥에도 기여했다. 그 음덕(陰徳) ・ 근검(勤倹)을 설파하는 사상(思想) ・ 행동은 호토쿠샤(報徳社)운동 등을 통해서 사후에도 영향을 주어, 메이지 이후, 국정교과서(国定教科書)나 창가(唱歌) 등에도 등장한다.–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 あらい-はくせき
메이레키 3년(明暦 3年, 1657年) ~ 쿄호 10(享保 10年, 1725年). 에도중기(江戸中期)의 주자학자(朱子学者) ・ 정치가(政治家). 에도(江戸) 출신. 이름은 킨미(君美). 키노시타 쥰안(木下順庵) – 유학자(儒学者) – 의 제자로서 도쿠가와 이에노부(徳川家宣)와 이에츠구(家継)를 섬겨 바쿠세이(幕政)를 보좌하고, 조선사절(朝鮮使節)의 처후 개선, 금은화의 개량, 나가사키 무역(長崎貿易)의 제한 등의 사업을 시행했다. 교학(教学)과 정치(政治)의 일치를 이념으로 하는 그의 집정(執政)은 「쇼토쿠의 치(正徳の治)」라 일컫는다. 주요서적으로는 「토쿠시요론(読史余論)」「한칸후(藩翰譜)」「세이요우키분(西洋紀聞)」「사이란이겐(采覧異言)」「오리타쿠시바노키(折たく柴の記)」 등이 있다.– 황종희(黄宗羲)
1610년 ~ 1695년. 중국(中国), 명(明)나라 말기부터 청(清)나라 초기의 학자. 저장성(浙江省) 위야오(余姚) 출신으로, 자(字)는 태충(太沖), 호(号)는 이주(梨洲)라 하였다. 청대(清代) 고증학(考証学)의 선구자의 일인이었다. 주요저서로는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録)」, 명대(明代) 학술서(学術史)「명유학안(明儒学案)」, 시문집 「남뇌문집(南雷文集)」등이 있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년 ~ 1778년. 프랑스(France) 계몽기(啓蒙期)의 사상가(思想家) ・ 소설가. 「인간불평등기원론(人間不平等起源論, Discours sur l’origine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사회계약론(社会契約論)」- Du contrat social – 등으로 문명이나 사회의 비인간성을 비판했고, 독자적인 인민주권사상(人民主権思想)을 설파해 프랑스 혁명(France革命) – Révolution Franaise – 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계몽주의(啓蒙主義)를 초월한, 자연상태(自然状態)의 이상화 – 인간회복 – 나 낭만주의(浪漫主義) – Romanticism – 도 선보여, 전인교육론 「에밀(Emile)」- Emile ou De l’éducation -, 자전적 작품 「고백론(告白録)」- Les Confessions -, 소설 「신(新)엘로이즈」- La Nouvelle Héloīse – 등 다양한 저서를 남겼다.
용어 설명
– 호토쿠샤(報徳社) ほうとく-しゃ
텐포 14년(天保 14年, 1843年),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徳)의 지도아래 오다와라(小田原)에 설립되었던 농민부조(農民扶助)를 위한 상호융자기관(相互融資機関). 손토쿠 사후에도 제자들에 의해서 잇달아 각지에 설립되어, 독립자영농민(独立自営農民)을 주체로 하는 결사로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에도 발전했다. 타이쇼 13년(大正 13年, 1924年), 다이닛폰 호토쿠샤(大日本報徳社)의 결성에까지 이르렀다.– 나가사키 무역(長崎貿易) ながさき-ぼうえき
에도시대(江戸時代), 쇄국(鎖国)후의 나가사키(長崎)에서, 중국(中国) ・ 홀란드(Olanda) – 네덜란드 – 사이에 행해진 외교무역.
원문 출처
마츠오카 세이고(松岡正剛)의 천야천권(千夜千冊)
사진 출처
분게이슌쥬(文藝春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