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翻訳): 방석구
伊藤博文(いとう ひろぶみ)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天保12年, 1841 ~ 明治42年, 1909. 享年69歳.
텐포 12년(天保 12年) ~ 메이지 42년(明治 42年). 향년 69세.
農民の子だったが桂小五郎の口ききで足軽、伊藤直右衛門の養子となり、辛うじて下級武士グループに仲間入りを果たす。桂、高杉晋作らにかわいがられ、彼ら大物志士たちの死後、”維新の生き残り”として位人臣を極める。
농민의 자식이었지만 카츠라 코고로(桂小五郎)의 주선으로 아시가루(足軽) 이토 나오에몬(伊藤直右衛門)의 양자가 되어, 간신히 하급부시(武士) 그룹(Group)의 대열에 합류한다. 카츠라(桂),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그들 거물 지사(志士)들의 사후에는 “유신(維新)의 생존자”로서 신하의 최고 지위에 오른다.
伊藤の人生は、桂によって大きく変わった。中でも吉田松陰の松下村塾に入れたことが、初代内閣総理大臣という夢のような栄達につながった。仲間内では「踏んづけた焦がし饅頭のような顔」と呼ばれ、身分的な理由からもある種の蔑みを受けていた。が、同じような境遇に引け目を感じて孤立化した山県有朋とは違い、伊藤は図太く、心身ともに異常なほどタフだった。先輩、同輩からいじめられても、太鼓持ちのようにさらりとかわし、逆に名前と顔を売った。 利発というより要領がよく、ともすればあざとさの臭う性格だが、便利だから桂たちの側にいることができた。先輩志士たちの間をこま鼠のように駆け回り、雑用係を務めることが伊藤の”志士活動”だったといっていい。
이토(伊藤)의 인생은 카츠라(桂)에 의해서 크게 변하였다. 그 중에도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쇼카손쥬쿠(松下村塾)에 입문했던 것이, 초대 내각총리대신(内閣総理大臣)이라는 꿈과 같은 입신출세로 이어졌다. 동료 내에서는「짓밟힌, 눌은 만두 같은 얼굴」이라고 불리고, 신분적인 이유에서나 있는 혈통의 경멸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처지에 열등감을 느껴서 고립화한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와는 달리, 이토(伊藤)는 넉살 좋고 심신 모두 이상할 만큼 강인했다. 선배, 동년배로부터 이지매 당했어도 다이코 모치(太鼓持ち)처럼 선뜻 이야기를 나누어, 거꾸로 이름과 얼굴을 널리 알렸다. 영리하다기 보다는 요령이 좋고, 자칫하면 약아 보이는 성격이지만, 편리했기 때문에 카츠라(桂)들의 곁에 있는 것이 가능했다. 선배 지사(志士)들 사이를 팽이쥐(こま鼠)처럼 뛰어다니고, 잡무계를 맡는 것이 이토(伊藤)의 “지사(志士)활동”이었다고 하는 것이 맡다.
身分が低かったため逆に藩意識に縛られることがなく、維新後にはライバル、薩摩閥の総帥、大久保利通の腰巾着となり、独特の嗅覚で政争の海を泳ぎ渡る。
신분이 낮았기 때문에 반대로 한(藩)의 의식에 얽매이지 않고, 유신(維新) 후에는 라이벌(Rival), 사츠마(薩摩) 파벌의 총수 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의 추종자가 되어, 독특한 감각으로 정쟁의 바다를 헤엄쳐 건넌다.
また雲の上の存在だった、上士の井上馨(聞多)にはなぜか愛された。 女と見れば手を出さずにいられない性豪ぶりまで、二人はまったく同じである。
또한, 구름 위의 존재였던 죠시(上士)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 – 통칭 분타(聞多) – 에게는 웬일인지 총애 받았다. 여자로 보면 손을 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세이고(性豪)다운 모습까지, 두 명은 완전히 같았다.
주(註): 원문에 덧붙여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히로부미(博文)는 제국헌법(帝国憲法) 제정. 텐노제(天皇制)의 확립에 진력(尽力)하였으며, 초대(初代) 내각총리대신(内閣総理大臣), 초대(初代) 스미츠인(枢密院) 의장(議長). 초대(初代) 한국통감부(韓国統監府) 통감(統監). 초대(初代) 키조쿠인(貴族院)을 역임했다.
메이지 38년(明治 38年, 1905年) 만주(滿洲) 하얼빈(哈爾濱)의 플랫폼(Platform)에서 독립운동가(独立運動家)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에 의해 암살(暗殺) 되었다. 히로부미(博文)는 죽기 전에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만, 조금 껄끄러운 면이 없지 않아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용어 설명
– 아시가루(足軽) あしがる
부케시대(武家時代)에 평상시에는 허드렛일을 하다 전시에는 병사(兵士)가 되던 최하급 부시(武士).– 쇼카손쥬쿠(松下村塾) しょうかそんじゅく
에도(江戸)초기 쵸슈하기(長州萩)에 있던 사설 교육기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숙부(叔父)로부터 이어받아서, 쿠사카 겐즈이(久坂玄瑞) ・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손노죠이(尊王攘夷) 운동 지사(志士)를 배출했다.– 다이코 모치(太鼓持ち) たいこ-もち
술자리에 나가 손님의 비위를 맞추고 주흥을 돋우는 것을 업으로 삼는 남자.– 세이고(性豪) せい-ごう
호색한(好色漢).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
관련 서적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씨의 바쿠마츠(幕末) – 도주하는 코고로(逃げの小五郎), 죽어도 죽지 않는다(死んでも死な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