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翻訳): 방석구, 총 진행도 51/56
山南敬助(やまなみ けいすけ)
야마나미 케이스케(山南敬助)
天保4年(1833) ~ 元治2年(1865). 享年33歳
텐포 4년(天保 4年, 1833年) ~ 겐지 2년(元治 2年, 1865年). 향년 33세.
新撰組の副長、あるいは総長。姓の読みは、正しくは”さんなん”。本人が三南、あるいは三男と当て字をしていることから証明される。が、仮名で”やまなみ”と書いていたという説もあり、従来からの親しみやすさも手伝ってこの読みが定着したようだ。
신센구미(新撰組)의 부장(副長), 또는 총장(総長). 성을 읽는 법은 “さんなん”. 본인이 山南(さんなん), 혹은 三男(さんなん)이라고 음독 했기 때문에 증명은 되지만, 카나(仮名)로 “야마나미(やまなみ)”라고 적었다는 설도 있다. 아마도 종래까지의 친숙함이 쉽게 곁들어져 이 읽는 법이 정착된 것 같다.
陸奥国仙台の出身で、江戸神田お玉ヶ池の玄武館に入門。いわゆる千葉周作の大千葉道場で、同門に藤堂平助らがいる。幼少時より、剣術師範の父から仕込まれていた山南は、またたく間に免許皆伝を得る。が、近藤勇と立ち合って敗れ、潔く門弟となった。
미치노쿠니(陸奥国) 센다이(仙台) 출신으로, 에도(江戸) 신덴(神田) 오타마가이케(お玉ヶ池)의 겐부칸(玄武館)에 입문했다. 이른바 치바 슈사쿠(千葉周作)의 큰 치바도장(千葉道場)으로 동문에 토도 헤이스케(藤堂平助) 등이 있었다. 유소년 시절부터, 검술(剣術) 사범(師範)인 아버지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야마나미(山南)는 눈깜짝할 사이에 멘쿄 카이덴(免許皆伝)을 받았지만, 콘도 이사미(近藤勇)와의 대결에서 패해 미련없이 그의 문하생이 되었다.
沖田総司とは特に親しく、一緒に多摩地方に出稽古にでかけ、門弟たちをしごいた。近藤、土方は別格として、沖田も他の隊士の中ではこの山南を最も慕っていた。そのため後に脱走に失敗して切腹する際、山南は介錯役を沖田に頼んでいる。
오키타 소지(沖田総司)와는 특히 각별해, 함께 타마(多摩)지방으로 출장지도를 나가, 문하생들을 지도했다. 콘도(近藤), 히지카타(土方)는 별격(別格)으로, 오키타(沖田)도 다른 타이시(隊士) 가운데에서 야마나미(山南)를 가장 잘 따랐다. 그런 이유로 훗날 탈주에 실패해 셋푸쿠(切腹) 할 때, 야마나미(山南)는 카이샤쿠(介錯) 역을 오키타(沖田)에게 부탁했다.
脱走理由には不明な点が多いが、もともと勤皇思想寄りだった山南が、強固な佐幕派になっていく近藤らと不和になったという説と、元治元年に入隊した伊東甲子太郎が重用されるのに比べ、自身が軽んじられていく焦燥感からという二説が有力。
탈주 이유로는 불명확한 점이 많지만, 본디 킨노사상(勤皇思想)을 가진 야마나미(山南)가 강고한 사바쿠파(佐幕派)가 되어가는 콘도(近藤) 등과의 사이에서 발생한 불화설과, 겐지 원년(元治 元年, 1864年)에 입대한 이토 키네타로(伊東甲子太郎)가 중용되는 것에 비해, 자신은 경시되어간다는 불안감이 원인이라는 두 가지 설이 유력하다.
色白で愛敬のある顔立ち。隊内では、松原忠司と並ぶ”親切者”といわれ、性格的にはとても温厚な人だった。その点でも、冷酷に徹して隊を厳格な規律で統制する土方と合わなかったのかもしれない。島原の遊女、明里とのロマンスは有名。
살결이 희고 애교 있는 생김새로, 부대 내에서는 마츠바라 츄지(沖田総司)와 나란히 “친절한 사람’이라고 불려, 성격으로는 매우 온후한 사람이었다. 이점에서도 냉철함으로 일관해 부대를 엄격한 규율로 통제하는 히지카타(土方)와는 맞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시마하라(島原)의 유죠(遊女) 아케사토(明里)와의 로맨스(Romance)는 유명하다.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