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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오카 세이고(松岡正剛) 천야천권(千夜千冊) 0914『이 국가의 형체(この国のかたち)』2부

번역(翻訳): 방석구, 총 진행도: 5/24

이 국가의 형체(この国のかたち)

第九百十四夜【0914】2004年1月13日
제914일째 밤【0914】2004년 1월13일

Seigow’s Book OS/WEAR

『この国のかたち』(全6冊)
『이 국가의 형체(この国のかたち)』(전6권)

司馬遼太郎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1990年~1996年、文藝春秋
1990년~1996년, 분게이슌쥬(文藝春秋)

文=松岡正剛
글: 마츠오카 세이고(松岡正剛)

– 4 –
 歴史小説というものは、当然ながら、歴史を「刻々の現在」の展開として描く。
 역사(歴史) 소설이라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역사(歴史)를 진행중인 현재(現在)로서 묘사한다.

 どんなに“地の文”が歴史記述っぽくあろうとも、嘘っぽくあろうとも、そこで交わされる登場人物のセリフは、その刻々の“現在”を告げている。オノレ・バルザックのように、“地の文”を現在的に書ける作家なら、なおさらだ。司馬もまた、『竜馬がゆく』においてパスティシュ風の手法をさまざま実験し、それをその後の作品で磨いていった。
 아무리 “지문(地文)”이 역사(歴史) 기술이나 허구 같을지라도, 등장 인물간에 오가는 대사는 진행중인 “현재(現在)”를 나타낸다.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처럼 “지문(地文)”을 현재의 시점으로 묘사하는 작가(作家)라면 더욱 그렇다. 시바(司馬)도 이와 같아서 『료마가 간다(竜馬がゆく)』에서는 혼성화(Pastiche) 풍의 기법을 다양하게 실험해, 그것을 다음 작품에 적용시켰다.

 こういうふうに、来る日もくる日も歴史を現在として書き続けている作家は、その思考そのものが歴史的現在になっている。司馬遼太郎は、とりわけそういう一人だったのである。
 이런 식으로, 매일매일의 역사(歴史)를 현재의 시점에서 적어나가는 작가(作家)는 그 사고(思考) 그 자체가 역사적 현재(現在)가 된다.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또한 그러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とくに戦争体験のある司馬においては、45歳をすぎるころから、日本を左右する出来事や言動がしだいにのっぴきならないものになっていた。こういう人は、歴史を学んでいるのではなく、歴史観をつくろうとしているのでもなく(よく司馬史観などといわれるが、こんなものじゃなかった)、はなっから歴史に生きている。
 특히 전쟁경험이 있는 시바(司馬)로서는 45세를 넘을 무렵부터, 일본(日本)을 좌우하는 사건이나 언동을 점차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사람은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역사관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 종종 시바 사관(司馬史観)등으로 회자되지만 이런 것은 아니다 -. 아예 역사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しかしこれは、作家だけに任せてよかったことではなかったとも言わなければならない。また作家なら作品に向かえばいいが、歴史と現在を交じらせなければならないのは、日本そのものなのである。今日の日本人なのだ。
 그러나 이것은 작가한테만 맡겨서 좋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작가라면 작품에 치중해도 좋지만, 역사와 현재가 교차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일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일본인(日本人)인 것이다.

– 5 –
 ぼくは、こういう日本人には、むしろ小説よりも、司馬の赤裸々の歴史語りを読んだほうがいいと思っている。
 나는 이런 일본인(日本人)이라면, 소설보다도 차라리 적나라한 시바(司馬)의 역사 이야기를 읽어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ところが『手掘り日本史』や『歴史のなかの日本』や『明治という国家』などの例外はあるものの、司馬はなかなか赤裸々な語りをしなかった。その理由はのちにも書くが、司馬はあんなにも大作を書きながらも、場面主義なのである。3分、5分、1時間の場面に、歴史的現在の渦中にいる人間がどのように臨んだか、そこを書いてきた人だった。それがつながって大河小説になっていただけだった。
 그러나『테보리 일본사(手掘り日本史)』나 『역사 속의 일본(歴史のなかの日本)』, 『메이지 라는 국가(明治という国家)』등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시바(司馬)는 좀처럼 적나라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뒤에서도 거론하겠지만, 시바(司馬)는 저런 대작을 집필하면서도, 장면주의(場面主義)에 치중했다. 3분, 5분, 1시간의 장면에 역사적 현실의 인간이 어떻게 임하는가, 그것을 그려왔던 사람이었다. 그것이 이어져 대하소설(大河小説)이 된 것이다.

 しかし、ついに観念したのか、その司馬が晩年極まって、「文藝春秋」に6年にわたって歴史語りを書いた。大半の課題を小説になしてきた司馬が、ついに赤裸々の寸前に至ったのである。
 그러나, 결국 체념했던 것일까, 그 시바(司馬)가 만년에 이르러, 「분카이슌쥬(文藝春秋)」에 6년에 걸쳐 역사 이야기를 집필했다. 대부분의 과제를 소설로 나타냈던 시바(司馬)가, 마침내 적나라함의 직전에 이른 것이다.

 それが『この国のかたち』である。以下、本書のごくごく一画を勝手に切り取って、なぜ司馬においては歴史が生きていたのかを覗いてみたい。
 그것이 『이 국가의 형체(この国のかたち)』이다. 이제 본서의 지극히 일부분을 제멋대로 취해, 왜 시바(司馬) 있어서는 역사가 살아있던 것인가를 살펴보고 싶다.

 キーワードは「異胎」。
 키워드는 「이태(異胎)」.

つづく….

주(註):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대한 기사 하나를 갈무리 해봅니다. 원문은 오마이뉴스의 “보수는 기강 있는 독수리, 진보는 유연한 비둘기” 입니다.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진보진영의 사관이 ‘자학적’이라고 생각하나?

 ”과장할 필요도 없고 자학할 필요도 없다. 역사란 있는 대로 파악해야 한다. 일본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일본과 한국에서 엄청나게 팔렸다. 그 시오노 나나미가 일본의 대표적 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를 평하기를 ‘료타로는 일본적인 것에 국척(跼蹐, 황송하여 몸을 굽힌다는 뜻)해서 국제적 안목이 없다’고 비판했다. 료타로는 명치시대를 찬미한 사람이고, 시오노 나나미는 이탈리아 생활을 해온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 <로마인 이야기>가 완결됐는데 한 대학교수가 이런 서평을 남겼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시대를 (너무) 찬미하는 나머지 그것이 일본의 대국화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다. 대국화 헤게모니 예찬밖에 더 되느냐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풍자와 딱 맞아 떨어진다.”

원문 출처
마츠오카 세이고(松岡正剛)의 천야천권(千夜千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