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翻訳): 방석구

高杉晋作(たかすぎ しんさく)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天保10年(1839) ~ 慶応3年(1867). 享年27歳.
텐포 10년(天保 10年, 1839年) ~ 케이오 3년(慶応 3年, 1867年). 향년 27세.
長州藩の150石取りの上士、高杉家の嫡男。吉田松陰の遺志を継ぎ、長州藩を倒幕勢力の筆頭に押し上げた立て役者。町人や下級武士など実戦能力の高い兵士を中心とし、また西洋の新式銃砲で武装した奇兵隊を創設。陸戦に天才的な才能があり、藩政府軍との戦闘や幕府の第2次長州征伐など無謀ともいえる難戦に奇跡的な勝利を収めた。
쵸슈한(長州藩) 150 고쿠(石)를 소유한 죠시(上士), 다카스기케(高杉家)의 적자.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유지(遺志)를 계승해, 쵸슈한(長州藩)을 토바쿠(倒幕) 세력의 필두로 부상시킨 주연배우였다. 쵸닌(町人)이나 하급부시(下級武士)등 실전능력이 높은 병사를 중심으로, 서양(西洋)의 신식총포(新式銃砲)로 무장한 키헤이타이(奇兵隊)를 창설했다. 육전(陸戦)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 한정부군(藩政府軍)과의 전투나 바쿠후(幕府)의 제2차(第二次) 쵸슈 세이바츠(長州征伐)등 무모하다고도 하는 난전(難戦)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温和な父と厳格な祖父に育てられ、家庭では従順な跡継ぎを演じていた。が、その本質は師、松陰が見抜いた通(とお)り、晋作は破滅型ともいえる天才肌の人物で、常人の思考を超越した幕末屈指のアジテーターかつパフォーマーだった。恐ろしいまでの自己顕示欲の持ち主で、自分以外の世の人間を全て見下したような態度。かと思えば藩主父子には犬のような忠誠を示し、上士でおぼっちゃんという境遇から、久坂玄瑞、入江九一など一部の例外を除き、同じ松陰門下の伊藤博文(俊輔)、山県有朋などに対しては身分蔑視があった。また金と女にルーズな遊び人で、藩の公金を湯水のごとく使って酒と色に耽った。
온화한 아버지와 엄격한 조부에게 가르침을 받아, 집에서는 순종적인 상속자를 연기하고 있었으나, 그 실체는 스승 쇼인(松陰)이 간파한 것처럼, 다카스기(高杉)는 파멸형(破滅型)이라고도 하는 천재기질을 보인 인물로, 일반인의 사고를 초월한 바쿠마츠(幕末) 굴지의 에지테이터(Agitator)이자 퍼포머(Performer)였다. 무서울 정도로 자기현시욕(自己顕示欲)이 강한 사람으로, 자신 이외의 세상사람을 모조리 깔보는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런가 하면 한슈(藩主) 부자에게는 견마지로(犬馬之労)를 아끼지 않고, 죠시(上士)로 도련님이라고 하는 위치에서, 쿠사카 겐즈이(久坂玄瑞), 이리에 쿠이치(入江九一)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같은 쇼인(松陰) 문하(門下)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 슌스케(俊輔) -,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등에 대해서는 신분 멸시가 있었다. 또 돈과 여자에 루즈(Loose)한 한량(閑良)으로, 한(藩)의 공금을 물쓰듯 사용해 주색(酒色)에 빠졌다.
しかしそうした欠点の数々を、人を惹きつける魅力に転化してしまう不思議な雰囲気があった。自信に満ちた振る舞いと雄弁、それに嵐のような果断な行動力で己れの大志を示し、混沌とした長州藩を倒幕一本にまとめ上げた。三味線や謡曲、漢詩、和歌に洒脱なセンスを見せた芸術家でもある。が、生来の肺病 (結核)があり、自分の役割を果たすと27歳の若さで世を去った。
그러나, 그러한 수많은 결점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으로 변환해버리는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자신에 찬 행동과 웅변, 게다가 폭풍과도 같은 과단성 있는 행동력으로 자신의 큰 뜻을 보여, 혼돈스러운 쵸슈한(長州藩)을 토바쿠(倒幕)로 통합시켰다. 샤미센(三味線)이나 요쿄쿠(謡曲), 한시(漢詩), 와카(和歌)에 소탈한 감각을 보인 예술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폐병 – 결핵(結核) – 이 있어, 자기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27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面白きこともなき世を面白く、すみなすものはこころなりけり。
재미있을 것도 없는 세상 재미있게, 산다는 것은 마음에 있구나.”
용어 설명
– 키헤이타이(奇兵隊) きへい-たい
1863년,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등에 의하여 창설된 쵸슈한(長州藩)의 군대. 아시가루(足軽) ・ 고시(郷士) 외 백성 ・ 쵸닌(町人) 등 한(藩)의 정규병 이외로 조직되어, 제2차 쵸슈 세이바츠(長州征伐) ・ 보신센소우(戊辰戦争) 등에 활약.– 쵸슈 세이바츠(長州征伐) ちょうしゅう-せいばつ
바쿠마츠(幕末)기, 도쿠가와 바쿠후(徳川幕府)의 쵸슈한(長州藩) 토벌전쟁. 겐지 원년(元治 元年, 1864年) 7월, 하마구리고몬의 변(蛤御門の変)에서 황거(皇居)로 발포한 것을 이유로 바쿠후(幕府)는 출병. 시코쿠(四国) 함대(艦隊) 시모노세키(下関) 포격(砲撃)사건(事件) – 시코쿠 연합함대 시모노세키 포격사건(四国連合艦隊下関砲撃事件) – 에 의해 보수파(保守派)로 실권이 바뀌고 있던 쵸슈한(長州藩)은, 항전하지 않고 바쿠후(幕府)에 항복 – 제1차(第一次) 쵸슈 세이바츠(長州征伐).그 후, 쵸슈한(長州藩)에서는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등의 토바쿠파(討幕派)가 반란에 의해 실권을 장악, 바쿠후(幕府)에 대립. 바쿠후는 케이오 2년(慶応 2年, 1866年) 6월 재차 정벌을 시작하지만, 제한(諸藩)의 반대 등으로 사기가 오르지 않고, 거한(挙藩) 체제인 쵸슈군(長州軍)에 각지에서 패해, 재 정벌은 실패, 바쿠후(幕府)의 권위(権威)는 급속히 약화되었다. – 제2차(第二次) 쵸슈 세이바츠(長州征伐).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
사진 출처
근대 일본인의 초상(近代日本人の肖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