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維新の嵐 ・ 幕末志士伝(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 千葉重太郎(치바 쥬타로)

번역(翻訳): 방석구

千葉重太郎(ちば じゅうたろう)
치바 쥬타로(千葉重太郎)

生没年不詳
생몰 불분명.

 千葉定吉の嫡男で佐那の兄。龍馬が学んだ北辰一刀流小千葉道場の若先生。ちなみに小千葉道場というのは、定吉の兄、周作が開いた玄武館千葉道場との混同を避けるため、人々の間で呼ばれた通称。別に道場の地名から、桶町千葉といわれることもある。
 치바 사다키치(千葉定吉)의 적자로 사나(佐那)의 오빠. 료마(龍馬) –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 가 수학한 호쿠신 잇토류(北辰一刀流) 작은 치바도장(小千葉道場)의 젊은 사범이다. 참고로 작은 치바도장(小千葉道場)이라는 것은 사다키치(定吉)의 형인 슈사쿠(周作) – 치바 슈사쿠(千葉周作) – 가 열었던 겐부칸(玄武館) 치바도장(千葉道昭)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 불리던 통칭이다. 별도로 도장(道場)이 위치한 지명으로 인해, 오케쵸 치바(桶町千葉)라고 불리기도 했다.

 温和な性格で情にもろく、龍馬の友人が横死した話を耳にした時などは、首にかけた手ぬぐいが絞れるほど涙を流したという。また龍馬とは師弟関係を超えた大親友の間柄。
 온화한 성격으로 정에 약해, 료마(龍馬)의 벗이 횡사(横死)한 이야기를 들었던 때에는 목에 걸친 수건을 짤 수 있을 정도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또 료마(龍馬)와는 사제관계를 넘어선 절친한 사이였다.

 大都会で人種のるつぼだった江戸の人らしく、よそ者ともすぐ打ち解ける気さくな人だった。小千葉道場が隆盛した背景には、指導の確かさに加えて、重太郎を初めとする家人の、地方出身者への優しさもあったはずだ。
 대도시로 인종의 도가니였던 에도(江戸)의 사람답게, 타지 사람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소탈한 성격이었다. 작은 치바도장(小千葉道場)이 융성했던 배경에는 검술지도의 확실함과 쥬타로(重太郎)를 비롯한 집안 사람들의 타지방 출신자에 대한 친절함도 배어 있었을 터이다.

 尊王ブームに感化され、龍馬をともなって勝海舟を斬りに出かけるが、それ以前に実は攘夷論から脱却していた龍馬に諭され、自身も開国論に目覚める。一時、龍馬と共に京・大坂で志士活動に奔走したこともある。しかし根は大のお人好しで、とても志士として政治工作や思想運動のできるタイプではなかった。
 손노(尊王) 붐(Boom)에 감화되어, 료마(龍馬)를 따라서 카츠 카이슈(勝海舟)를 베러 갔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죠이론(攘夷論)에서 탈퇴한 료마(龍馬)에게 인도되어, 자신도 개국론(開国論)에 눈떴다. 한때, 료마(龍馬)와 함께 쿄토(京都) ・ 오사카(大坂)에서 지사(志士)활동에 분주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본성은 대단한 호인으로, 도저히 지사(志士)로서 정치공작(政治工作)이나 사상운동(思想運動)을 할 타입(Type)은 아니었다.

 剣術の腕は一流で、定吉の跡を継いで道場を盛り立てつつ、鳥取藩の剣術指南役を務め、藩士の軍事教練に大いに貢献した。
 검술(剣術) 솜씨는 일류로, 사다키치(定吉)의 대를 이어 도장(道場)을 번창시키면서, 톳토리한(鳥取藩)의 검술 지남(剣術指南)역을 맡아, 한시(藩士)의 군사교련(軍事教練)에 크게 공헌했다.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