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寝ながら学べる構造主義)
목적: 구조주의(Structuralism)의 이해
제2장 창시자 소쉬르의 등장
언어는 ‘사물의 이름’이 아니다
’사물의 이름은 인간이 제멋대로 붙인 것이다‘라는 것이 ‘카탈로그 언어관’의 기본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 언어관은 약간 문제가 있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름이 있기 전부터 사물은 이미 존재했다‘ 라는 전제입니다.
언어활동이란 ①’모두 분절되어 있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②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자리를 정하는 것처럼 비정형적이고, 성운 모양을 한 세계를 쪼개는 작업 그 자체입니다. ①어떤 관념이 먼저 존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②이름이 붙으면서 어떤 관념이 우리의 사고 속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경험은 언어에 의해 규정되는 것
말은 늘 ‘그 관념을 낳은 종족의 사상 – 즉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 방법 – 을 짙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 관념을 표현할 수 있는 동의어가 모국어에 없는 경우입니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는 등에 전쟁에서 입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주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녔습니다. 지팡이에 매달리듯 걸어가던 케네디 대통령의 모습을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생이던 나에게는 단지 ‘아프겠구나’ 정도로 생각되던 그 영상을 당시 미국 국민은 ‘등이 굽을 정도로 과중한 업무를 견디고 있는 대통령’ 이라는 강렬한 메시지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이처럼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깊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신체적 경험 또는 같은 세계인이라면 누구나 경험 할 수 있는 물리적・생리적 현상까지 언어의 틀을 통과하면 그 모습이 달라집니다.
‘타인의 언어’를 말하는 우리
– 구조주의(Structuralism)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어떤 것의 성질이나 의미, 기능은 그 사물이 그것을 포함한 관계망, 또는 시스템 속에서 어떤 ‘포지션’ 을 차지하고 있는가에 따라 차후에 결정된 다는 것으로 사물 자체에 생득적이거나 본질적인 어떤 성질이나 의미가 내재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이 ‘마음속에 있는 어떤 생각’을 말을 통해서 ‘표현한다’ 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쉬르에 따르면 매우 부정확한 말입니다.
내가 말을 하고 있을 때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습득한 언어 규칙이고, 내가 몸에 익힌 어휘이며, 내가 듣고 익숙해진 표현, 내가 아까 읽었던 책의 일부입니다.
– 자아중심주의(egocentrisme)
‘나의 정체성’ 이나 ‘마음속 생각’ 에 서구 세계는 오랫동안 ‘자아’ 라든지 ‘코기토(cogito)’, ‘의식’ 등의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세계 경험의 중추에 두었습니다. 모든 것은 ‘나’ 라는 주체를 중심으로 돌고 있고 경험이란 ‘내’ 가 오부에 나가서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며, 표현이란 ‘내’ 가 자신의 내부에 담겨 있는 ‘생각’을 이런저런 매개체를 경유해서 표출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제3장 푸코와 계보학적 사고
역사는 ‘지금・여기・나’ 를 향해 있지 않다.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제도는 과거의 어느 지점에,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의 복합적인 효과로서 ‘탄생’ 한 것으로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지적하고 그 제도나 의미가 생성된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는 것. 그것이 바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사회사’ 작업입니다.
역사의 흐름이 ‘지금・여기・나’ 에 이른 것은 다양한 역사적 조건이 예정 조화적으로 종합된 결과 – 인간주의(humanisme), 자아중심주의의 일종 – 라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이 배제되어 오히려 점점 홀쭉해진 결과가 아닐까 하는 것이 푸코의 근원적인 물음이었습니다.
그 해답을 알기 위해서는 사건이 생성된 역사상의 그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 고찰해보아야 합니다. 고찰하고 있는 주체인 푸코 스스로 ‘지금・여기・나’ 를 ‘괄호에 넣고’ 역사적 사상 그 자체와 정면에서 마주한다는 지적 금욕을 스스로 부과해야만 했습니다. 푸코는 이러한 학술적인 접근을 니체의 계보학적 사고에서 계승했습니다.
광기를 긍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기는 환한 대낮에 논의되었다. 『리어 왕(King Lear)』을 보라. 『돈 키호테(Don Quixote de la Mancha)』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반세기도 안 되어 광기는 갇히고 고립되었으며 수용의 요새에서 이성에, 도덕규범에, 그리고 도덕규범의 획일적 어둠에 묻혀버렸다.
-『광기의 역사(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中 발췌
푸코는 17세기 유럽을 ‘대감금 시대’ 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에 이르러 근대사회는 ‘인간’ 표준에 어울리지 않는 모든 것 – 정신병자, 기형인, 부랑자, 실업자, 거지, 빈민 등 다양한 ‘비표준적인 개체’ – 을 강제적으로 배제하고 격리했기 때문입니다.
17세기에 광인의 감금을 결정하는 것은 사법관이었습니다. ‘반사회성’ 이라는 면에서 광인은 가난한 자와 동격이었습니다. 그런데 18세기에 들면서 여기에 새로운 경계선이 그어지게 됩니다. 광인만이 별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됩니다. 이제 그들은 ‘치료의 대상’ 이 됩니다.
이 ‘단단한 격리’ 로부터 ‘부드러운 격리’ 로의 이행 과정에서 어떤 공범관계가 암묵적으로 생겨납니다. 그것은 바로 의료와 정치의 결탁, 즉 ‘지와 권력’ 의 결탁입니다.
권력은 감촉이 부드러운 이성적인 ‘대리인’ 인 ‘학술적인 지’ 를 통해서 오히려 철저하게 행사됩니다.
신체는 하나의 사회제도
푸코의 기본적인 생각은 ‘지와 권력’이 근대사회에서 인간의 ‘표준화’ 라는 방향을 목표로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표준화는 다양한 차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현저하게 드러난 것이 ‘신체’ 에 대한 표준화의 압력입니다.
우리는 신체라는 것을 생리적・물리적인 ‘자연’ 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동서고금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기능을 하고 고대인이든 현대인이든 지각이나 신체 조직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푸코에 따르면 신체 또한 ‘의미에 의해 엮여있다’ 는 점에서 일개 사회제도에 불과합니다.
왕이 지닌 두 개의 신체
푸코는 형벌의 역사 – 아마도『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에서 신체형의 분석을 통해 전근대의 신체형이 그토록 잔인했던 것은 형별이 목표로 했던 신체가 우리의 신체와는 ‘다른 신체’ 였기 때문이라고 주장 했습니다.
왕은 자기 속에 두 개의 신체, 즉 ①자연적 신체와 ②정치적 신체를 갖고있다. 그의 ①자연적 신체는 죽을 수 있는 신체이다. 그러나 ②그의 정치적 신체는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신체이다 정치 조직이나 통치기구로부터 만들어지며 인민을 지도하고 공공의 복리를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왕의 두 신체(The King’s Two Bodies)』中 발췌
국가는 신체를 조작한다
근대 국가는 예외 없이 국민의 신체를 통제하고 표준화하며 조작 가능한 ‘관리하기 쉬운 형태’ 로 두는 것, 즉 ‘순종적인 신체’ 를 조형하는 것을 정치적 과제 가운데 최우선으로 내걸었습니다. ‘신체에 대한 권력의 기술론’ 이야말로 근대 국가를 건설하는 데 초석이 된 정치기술입니다.
정치권력이 신민을 조종하려고 할 때 권력은 반드시 ‘신체’ 를 표적으로 합니다. 모든 정치권력은 갑자기 인간의 ‘정신’ 과 마주하고 의식 과정을 주무를 수가 없습니다. ‘장수를 쏘지 말고 말을 쏘라’ 또는 ‘정신을 통제하지 말고 먼저 신체를 통제하라’ 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러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왜 성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할까?
인간의 온갖 성적 행위를 망라한 목록을 만드는 것, 그것을 공공화하는 것, ‘기호’ 를 공유하는 마니아들을 조직화하는 것, 매춘부나 포르노그래피를 다루는 성 상품 시장을 세우는 것, 의학이나 정신병리학, 사회학 등을 성에 대한 학문적 지식으로 편성하는 것 등 이런 무수한 흐름이 ‘①성의 담론화‘ 라는 담담한 거대 강의 흐름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사분란하게 한 방향을 향해 흘러가는 ‘②통제된 욕망‘ 의 모습에서 푸코는 근대 권력 장치의 효과를 간파합니다.
주(註): ① 우리는 성적으로 억압되어 있다. ② 온갖 인간 군상을 일람할 수 있는 목록으로 정리하려는 야심.
푸코가 ‘권력 비판’ 의 이론을 세웠다는 식으로 결론을 짓는 것 역시 그가 진정으로 원한 일이 아닙니다. 푸코가 지적한 것은 모든 지의 영위가 그것이 세계의 성립이나 인간의 모습에 대한 정보를 정래해서 ‘축척’ 하려고 하는 욕망에 의해 구동되는 한 반드시 ‘권력’ 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적혀 있는 푸코의 학술적 이론도, 그리고 (이 책을 포함해서) 푸코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기술되거나 소개되는 모든 저술 또한 숙명적으로 ‘권력’ 적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여기에 있는 이 ‘나’ 는 도대체 어떤 역사를 경유하여 형성된 것일까? 그것을 묻는 것이 푸코가 주장한 비판의 구조이지만, 사실 그것은 ‘자기의 눈으로 자기의 뒤통수를 보고 싶다’ 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희망입니다. 그러나 이 불가능한 희망에 가진 재산을 모두 건 미셀 푸코의 작업은 그 무모함 때문에라도 앞으로 오랫동안 칭송 받을 것입니다.
사족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구조주의(Structuralism)적 시각으로(본인은 부정했지만) 『광기의 역사(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를 통해 분류되어 사회에 편입된 표준화된 인간에 대해서,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에서는 그 표준화된 인간을 신체적으로 길들이고 최종적으로 정신까지 잠식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인물 설명
–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 スイスの言語学者。の曽孫。ドイツに学び、パリやジュネーブで教育・研究にあたった。印欧語研究にめざましい業績をあげたほか、講義をまとめた「一般言語学講義」は言語理論の発展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構造主義言語学の礎となった。–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フランスの哲学者・歴史学者。構造主義の立場から思想や知の認識論的研究に大きな業績をあげた。著「狂気の歴史」「言葉と物」「性の歴史」など。
용어 설명
– 인간주의( Humanisme)
인문주의(人文主義). 휴머니즘.– 기호론(記号論)
《semiotics/semiology》일반적으로 기호라고 일컬어지는 것의 본질(本質)・본연의 모습・기능(機能)을 탐구하는 학문. 미국(米国)의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와 스위스(Suisse)의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에 의해 시작되어, 논리학(論理学)・언어학(言語学)・인류학(人類学)・예술(芸術) 등과 연관된다.– 구조주의(構造主義)
《(フランス)structuralisme》人間の社会的、文化的諸事象を可能ならしめている基底的な構造を研究しようとする立場。ソシュール以降の言語学理論を背景に、レビ=ストロースの人類学でこの方法が用いられて以来、哲学や精神分析など、主として人文・社会科学の領域で展開されている。